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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 악역이 없는 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서민들의 궁핍한 삶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은 역사적으로 대단한 사건이며 마치 이 사건을 계기로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듯한 인상을 주지만, 혁명 이후에도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장발장은 어린 조카에게 먹일 빵을 훔치다 잡혀서 19년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판틴은 빛을 갚아 딸 코제트를 살리기 위해 머리카락도 팔고 창녀가 된다.

 

'레미제라블'의 뜻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한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사람은 누군가? 내 생각에 이 영화에서는 악역, 즉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진짜 나쁜놈'은 등장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영화의 악역은 자베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경찰과 군인들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을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도 이들이 악역이라기 보다는 장발장이나 혁명군들과 똑같이 '불쌍한 사람'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들 역시 불쌍한 사람이다. 자베르는 스스로를 "교도소에서 태어난 천박한 출신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장발장이나 프랑스 혁명군처럼 법을 어기는 삶을 살지 않고,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베르가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장발장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자베르는 "난 너를 꼭 잡을 것이기 때문에 나를 놓아주면 후회한다. 그러니 그냥 나를 죽여라." 라고 말한다. 하지만 장발장은 자베르를 살려준다. 살아난 자베르가 다시 장발장을 잡을 기회가 왔을 때, 자베르는 도둑놈에게 빚지고 살 수는 없다며, 그를 놓아준 것처럼 장발장을 놓아준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택한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남의 물건이나 훔치고, 죄를 짓고 도망치는) 장발장 같은 부류의 사람은 원수였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서슴없이 죽이는 그런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장발장은 자신을 살려주었고, 이는 자신의 영혼을 죽인 거라고 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어찌보면 자베르는 자신의 신념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지키며 살았던 고결한 사람이었다.

 

혁명군을 진압하던 군인들 역시 악역이 아니다. 영화에서 '바리게이트 전투'가 끝난 직후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화면에서는 죽은 혁명군의 숫자보다 죽은 군인들의 숫자가 더 많게 비추어진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혁명군은 '선'이며, 군인들은 '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닐까. 어찌됐든 서로 총을 겨누며 싸웠고, 혁명군 만큼의 군인들도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들 역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맡아서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었다.

 

이렇듯, 이 영화에는 악역이 없다. 그저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고 살거나 맡은 일에 충실하지만, 그 일이 실현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레미제라블)'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며 5.18 민주화 운동도 생각이 났고, 보수냐 진보냐 각자 자신이 '믿는 바'를 외쳐대던 제 18대 대선도 생각이 났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어느 쪽에 있어도 '불쌍한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