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4/7

오늘 죽더라도 내일이 있으니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왜 살까?

 

태어났으니까? 죽지 못해서?

죽는 게 무서워서? 미래가 궁금해서?

후회 없이 죽기 위해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혹은

지금껏 먹어치운 수천 마리의 동물, 수천 킬로의 곡물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면,

애초에 삶에 목적 따위는 없는 건가?

 

저마다 나름의 이유는 분명히 있을 테다. 비록 그걸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지? 살아왔던 이유들은 죽음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영화 레미제라블을 두 번째 봤다. 내용을 알고 보니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깊게 생각하면서 볼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는다.

돈의 노예가 되어 창녀촌에서 농락당하며 가혹한 죽음을 맞이한 판틴,

평생을 기구한 운명의 장난 속에서 살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베르,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 따스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다 결국 그 사람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하는 에포닌,

배고픈 자 없이 '모든 사람이 왕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죽어간 혁명군들,

혁명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역시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던 군인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살았고, 왜 죽어야 했는가?

그들의 죽음은 무엇을 남겼을까?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왜 죽어야 했는지는 신만이 안다.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그들의 죽음이 남긴 건 누군가의 '내일'이라는 점이다.

 

판틴의 죽음은 장방장에게 '코제트와의 삶'이라는 내일을 선물했고,

에포닌의 죽음은 마리우스에게 '살아있는 내일'을 선물했다.

장발장의 삶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에게 행복한 내일을 선물했고,

혁명군과 군인들의 죽음은 수백 년 후의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 내일을 선물했다.

 

결국 우리는 오늘 죽는대도,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누군가의 또다른 내일을 창조하는 셈이다.

 

레미제라블을 처음 봤을 때 최고의 명장면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첫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 보니 최고의 명장면은 각각의 배우들이 '내일이면'을 외치는 장면이었다.

 

 

 

 

 

 

 

 

 

'24/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의 꼬리  (4) 2014.02.13
서른 즈음에  (2) 2013.12.23
나 부자 될 것 같아  (0) 2013.02.04
[신촌 맛집] 맛있는 참치, 다찌  (0) 2013.01.22
내 인생의 다음 퍼즐은 어디에?  (1) 2013.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