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1년 2월 26일 싸이월드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
어떻게 보면 인생은 숫자에 무뎌져가는 과정인 것 같다.
순수할 만큼 어릴 적엔 20살이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완전 어른' 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부러웠지만, 결코 내가 오를 수 없는 산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20살 짜리를 보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뿐이다. 또한 그 시절에 500원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좋아하던 쌍쌍바를 사먹어도 300원이나 남아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500원이면... 말 그대로 '껌값'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500원을 우습게 보는 20살을 훌쩍 넘긴 성인이 되었지만, 몇몇 숫자들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특히 돈과 관련된 숫자들은 도대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기만 하다. 이승엽이 작년에 받은 연봉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1원 씩 나누어줄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그 이상 넘어가면 이건 뭐... 인생을 초 단위로 환산해도 300억 초를 넘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노 모씨는 평생 동안 1초에 10원 이상 씩을 모은 셈인가?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아닌 빌게이츠가 어떻게 자기 힘으로 50조가 넘는 돈을 모았는지는 미스터리다.
돈의 숫자가 하도 거대하다보니 돈에는 굳이 '원'자를 붙이지 않아도 말이 통한다. "나한테 300만 있었으면" 이라고 할 때 스파르타 용사들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큰 거 세장이면 되겠어?" 라고 할 때 A2 용지 3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돈에서 왜곡된 숫자의 이미지는 우리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나이가 기껏해야 100살을 넘기지 못하니 어른에 대한 공경이 사라졌고, 100명이 넘는 연인을 만나도 사랑을 알지 못한다. 100 따위의 숫자쯤은 돈을 세는 단위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려면 몇 십억은 벌어야 할 것 같다. 20여 년 전처럼 500원짜리에 행복해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50개 정도에 불과한 아는 한자 수를 몇 백 개로 늘려야 하고, 100권을 넘지 못하는 읽은 책의 수도 몇 배 이상 늘려야 한다. 또한 토익과 학점을 곱한 값이 3000 가까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짜증난다. 모든 게 숫자놀음에 불과한 일인데.. 사실 이게 무지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그래도 '백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 부채와 맞먹는 허황된 돈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보다 물 위를 아름답게 떠다니는 '기러기목 오리과 고니속'에 속하는 동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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