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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영화후기] - Too old hiphop kid (1편)

영화 한 편을 봤다. 'Too old hiphop kid'라는 영화인데, 여태껏 내가 보았던 영화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교훈이 있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사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의 소재인 힙합을 좋아하기도 하고, 영화의 내용이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아서, 아무튼 '나'에게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영화였다. 이 영화만으로도 영화후기 세 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과정은 극적이었다. 집에 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영화나 한 편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IPTV 유료 결제를 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4000원이었는데, 9000원이면 한달 동안 무제한으로 시청이 가능하대서 한달 정액권으로 결제했다. 결제 후, 애초에 보고 싶던 영화였던 '남영동 1985'와 '반드시 크게 들을 것 2'를 봤다. 그리고 또 볼만한 영화가 있나 살펴보는데 별로 흥미로운 영화가 눈에 띠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영화목록을 넘기다가 영화목록 끝자락 즈음에 눈에 띠는 제목을 발견했다.

 

Too old hiphop kid (투 올드 힙합 키드)

 

 

이 영화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정대건이라는 한 청년(대학생)이 만든 영화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부터 기획, 각본, 촬영, 편집까지 모두 혼자서 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군 제대 후 갑자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청년은 무작정 무언가를 찍기 시작했고,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는 십대 시절 힙합 동호회 활동을 하며 MC(힙합가수)를 꿈꿨던 청년들(감독도 이 청년들 중 하나다)의 10년 후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그 청년들 중에는 현재 언더 힙합씬에서 나름 '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허클베리 피'와 'JJK'도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눈길이 갔다.

 

이들은 예전에 다이나믹듀오 같은 스타가 될 것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랩을 했던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10년 후의 모습을 살펴보면 누군가는 어느 정도 그 꿈을 이루었고, 누군가는 아직 그 꿈을 꾸는 중이고, 누군가는 회계사, 대학원생,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강사 등 힙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부터 하자면, 일단 상업성이 전혀 없는 주제와 내용, 그리고 너무 평범한 형식을 사용했다. 영화라는 것은 어찌됬든 사람들이 많이 봐주어야 그 의미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런 주제와 내용으로는 '나 같은 놈' 외의 관객들을 끌어모으기에 역부족이다. 형식도 참신하지 않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보던 형식과 차별되는 점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 찍어보는 영화라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높은 수준의 기획력과 연출력이 엿보이는 작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던 이유는 하나다. 잘만든 영화고 못만든 영화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힙합과 관련된 영화라면 무조건 찾아볼 사람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힙합문화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사랑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힙합'이라는 주제를 사용하고, 자신을 포함한 그의 친한 사람들을 영화에 등장시킨건 어쩌면 초보감독으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드는 영화를 잘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힙합'이라는 주제를 사용했다. 영화 자체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 나에게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는 이 사실은 창작자 계열의 모든 종사자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창작자들은 그들의 창작물을 소비해주는 대중이 꼭 필요한 직업이다. 창작자들은 대중의 눈과 귀를 집중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창작물을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작사가들은 어떤 가사를 쓸지, 영화감독은 어떤 영화를 만들지, 가수들은 어떤 스타일로 노래를 부를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창작자들은 항상 대중들의 기호를 생각해야 하지만,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스타일)나 자신있는 주제(스타일)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창작자도 어찌보면 하나의 대중일 뿐이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그렇게 많이 다양하지 않다. 누구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힙합을 좋아한다면 분명 어딘가에 있는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도 힙합을 좋아하고 있기 마련이다.

 

영화 속 내레이션에서도 나오듯, 정대건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무시와 괄시와 멸시와 등한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된다. 대중의 평가를 의식해서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삼기 전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이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일일지라도) 창작자의 기본적인 소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