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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7번방의 선물] 잘못한 영화

#경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라 불리는 류승룡의 파격적인 변신이 있었고, 주연부터 아역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이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관객 수를 떠나서 관객 평점이라든지,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다"는 '찬사' 수준의 영화 후기들로 더욱 관심을 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볼 때에 이 영화에는 감동이 있었으나 그 감동은 '불편한 감동'이었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웰메이드' 영화라고 보기 힘들다. 이 영화의 감동이 불편한 이유는 주인공 이용구(류승룡)의 죽음이 너무 억지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든다. 감옥에서 같은 방을 쓰는 동료 죄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의 어린 딸을 감옥으로 데려오는 설정이나, 쫒겨난 딸을 다시 교도관장이 감옥으로 데려오는 설정, 허접한 열기구를 타고 탈옥을 시도하는 설정 등은 근래의 코메디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케일의 '판타지'였다. 하지만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록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었지만 분명 이런 요소들이 있었기에 영화가 더 재밌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건 단지 이용구의 죽음이다.

 

영화에서 '죽음'이라는 소재는 감동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단골메뉴다. 영화 '아마겟돈'이나 '타워'에서처럼 모두를 위한 주인공의 희생(죽음)은 감동적이고, 주인공이 병이나 사고로 죽어 '완성되지 못해서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 결말이 되는 영화에서의 죽음 역시 감동(슬픔)이 있다. 하지만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이용구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용구는 그의 어린 딸 예승이와 지능이 비슷한 아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기 자식과 지능이 비슷한 바보여도 충분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록 엄마도 없이 가난한 삶을 살지만 '바보' 아빠가 있기에 예승이는 행복하게 살아간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와서 결국엔 사형이 선고 되었지만 동료 감옥 죄수들조차 "저놈을 그냥 죽게 놔둘수는 없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며 물심양면으로 이용구의 재판을 돕는다. 범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용구는 '무조건 살아야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나름 이용구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말을 하고 있기는 하다. 경찰청장의 협박이 있었고, 그래서 오직 자신의 딸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장면이다. 이 장면은 현실적인 개연성도 없고, 그렇다고 '판타지'라고 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부분이다. 이건 이용구를 죽음으로 내몰아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고자 했던 감독의 욕심이 만든 일종의 '억지'다. 비슷한 일이 실화로 존재해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기라도 한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비록 피해자의 아버지라고는 해도,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이 법원에서 확실한 범행 증거도 없는 죄수의 대기실에 들어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네 딸도 똑같이 죽여버리겠다."라고 협박한다. 그래서 죄가 없는데도 범행을 인정하고 사형이 구형된다.>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 '이건 영화니까...'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임의의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바꿀 수 있는 '영화니까' 더 화가 난다.

 

이 영화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래서 영화 속 대사에서조차 주인공을 "이렇게 죽일 수는 없다. 꼭 살려야 한다"라고 하며 관객들을 감정이입 시겨놓고, 결국엔 죽인다. 물론 이용구가 죽지 않았으면 이 영화가 지금 정도의 흥행을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굳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이용구를 살려라도 놓고, 나중에 예승이가 변호사가 되서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대단히 유쾌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몹시 불쾌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오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우선 이용구를 죽게 만든 감독이 잘못했다. 경찰청장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격하게 감정이입되서 이렇게 열변을 토해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친 류승룡과 그의 딸 예승이를 연기한 아역배우도 잘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