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1년 6월 30일 싸이월드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
타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야구는 '절반 미만의 확률' 안에서의 싸움이다. '꿈의 4할'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4할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 생각에 지금 한미일 현역 프로야구선수 중에 앞으로라도 4할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10번 중에 3번 정도 안타를 치면 3할, 즉 정상급 타자다. 프로야구 2군과 1군의 차이는 100번 중 22번을 치냐, 25번을 치냐의 차이이며, '그저그런 타자'와 '정상급 타자'의 차이는 100번 중 27번을 치냐, 30번을 치냐의 차이이다. 2009년의 경우 타격 1위와 2위의 차이는 1000번 중 372번을 쳤는지, 371번을 쳤는지의 차이였다.
한 번이라도 안타를 더 칠 수 있는 것은 물론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떤 타자라도 타석에서 안타를 칠 수 없는 확률이 더 높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냉정한 도박사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타자가 나왔든 간에 '안타를 못 친다'에 돈을 거는 일이 현명한 선택이다.
오늘 프로야구 기록실을 살펴보다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팀의 '3번 타자'와 다른 한 팀의 '5번 타자'가 있다. 3번 타자나 5번 타자의 역할은 같다. 가장 강력한 한방을 가진 4번 타자와 함께 안타, 특히 장타를 만들어내어 팀에 많은 점수를 뽑아주는 일이다. '3번 타자'의 타율은 3할 7푼 3리이고, '5번 타자'의 타율은 2할 3푼 2리이다. 비교가 안 된다. '3번 타자'는 타격 선두를 다투는 선수이고, '5번 타자'는 2군으로 내려가도 할 말 없는 선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은 똑같이 44타점으로 타점 공동 8위에 올라있다. 3번 타자나 5번 타자의 역할이 팀에 많은 점수를 뽑아주는 일이라고 했을 때, 1000번 중 373번을 치는 타자와 232번을 치는 타자의 팀 공헌도가 같은 셈이다. 물론 득점에서 차이가 좀 나고, 타점은 선행 타자들의 출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결론은 이렇다. 타자는 어차피 절반보다 낮은 확률로 싸워야 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안타를 조금 덜 쳤다고 그 선수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간혹 쳐주면 되는 거다. 10번의 기회에서 2번 혹은 3번만 쳐주면 된다. 4번까지 치는 건 감독도 안 바란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타자들은 칠 때보다 못 칠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30년에 걸쳐 증명해주었다. 그게 야구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실패보다 성공을 더 많이 해야 될 이유는 '욕심' 말고는 없다. 인생에서 맞이하는 10번의 기회 중에서 3번만 성공해도 충분히 잘한 거다. 그게 야구고, 그게 인생이다. 우리도 어차피 절반 미만의 확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pr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비되지 않았지만 어색하지 않은 (0) | 2013.01.08 |
---|---|
100조 (1) | 2012.12.26 |
미완성 (0) | 2012.12.24 |
인간쓰레기-잉여인간 (4) | 2012.12.15 |
확대해석 (4) | 201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