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인터넷 기사를 볼 때, 기사보다 더 주의 깊게 보는 것은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다. 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수많은 댓글을 다는 심리가 궁금했다. 그리고 특정 기사에 어떤 성격의 댓글들이 많이 달리며, 어떤 댓글이 많은 추천이나 공감을 얻는지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을 지겨보니 사람들이 댓글을 다는 이유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공감받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댓글 여론'의 방향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내가 볼 때는 비슷한 기사인데도 전혀 다른 댓글 여론이 형성될 때가 많고, 그런 댓글 여론은 상상 이하로 저질스럽다.
대표적으로 유명인과 '듣보잡'에 대한 차별이 있다. 지금처럼 축구, 야구 시즌이 아닌 때에는 포털사이트의 스포츠 인기 기사는 농구장이나 배구장의 치어리더들의 사진으로 도배된다. 늘씬한 치어리더가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사진이 올라오는 이런 기사의 댓글에는 온갖 '섹드립'이 난무한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표현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기사의 댓글은 치어리더 본인 뿐 아니라 그 부모, 가족, 친구들도 다 본다는 점도 반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반면 비슷한 수준의 노출 의상을 입은 (호감)연예인의 사진에는 '섹드립'을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진짜 예쁘다.", "여신 같다."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간혹 치어리더가 춤을 추다 가랑이가 조금이라도 벌어지는 사진이 나오면 댓글은 더욱 가관이다. 블로그 자체 심의상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오늘 김연아가 넘어지면서 가랑이가 벌어진 사진이 올라온 기사에는 "기자 왜 사진을 이따구로 찍나", "기자 고소 해버린다" 등 치어리더 때와는 180도 다른 댓글 여론이 형성됐다.
지난 주말에는 두 사람의 죽음에 관한 기사로 온라인이 뜨겁게 달궈졌다. 전직 야구선수 조성민이 자살했고, 전직 조폭 김태촌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보통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은 사람한테 뭐라 하지 말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댓글이 많이 달리고, 공감을 얻는다. 전직 아나운서, 연예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악플로 괴로워하고 자살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에게까지 많은 악플이 달리지는 않았다. 조성민도 불과 얼마 전까지 악플에 시달렸지만, 막상 죽은 이후에는 "불쌍하다", "애도한다"는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김태촌의 사망 소식 관련 기사에는 유례없는 악플이 달렸다. "쓰레기가 죽었다.", "깡패새끼니 진작 죽었어야 한다" 등등... 게다가 유명인사가 빈소에 찾아갔다는 기사가 뜨자 그 사람까지 욕을 먹는다. 반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한 안티부대를 소유한 강병규가 조성민의 빈소에 간 기사에는 나름 호의적인 댓글 여론이 형성된다.
뭔가 A급스럽지 않은, 수준 낮은 무언가를 B급이라고 한다면, 수준이 낮은 데다가 그 이유조차 분명하지 않고 일관성 마저 찾아보기 힘든 악플러들은 C급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애초에 C급 악플러들을 만들어 내는 건 B급 언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어리더들의 사진에 온갖 저질스런 댓글이 달릴 때를 생각해보면 기사 제목 자체가 "저 준비 다 됐어요" 등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멘트였다.
다음은 김태촌의 빈소의 찾아간 유명인사의 관한 기사 제목과 내용이다.
제목 : '범서방파' 김태촌 빈소 유명인사 화환 가득
내용 : 전날에 이어 빈소를 찾은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는 "태촌이와 오랜 사회 친구"라며 "마음이 참 따듯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건 마치 기자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멘트로 네티즌을 꼬득여서 '하일성을 씹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왜 굳이 저런 제목에, 혼잣말이나 유족에게 건낸 위로의 말 같아 보이는 말을 마치 공식적인 인터뷰처럼 느껴지게 만드냐는 말이다.
인터넷 언론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극성이나 선정성이 부족한 기사는 사람들의 조회수를 얻지 못하고, 이는 해당 언론의 '밥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인터넷 언론은 별수없이 계속해서 B급 기사를 쏟아낸다.
내가 처음 '언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 학교에서 '대중매체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들었다. 당시 조별발표를 위해 조원들과 대중매체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얼까 고민하다 발표주제를 "TV 속 선정성, 자극성"으로 정했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분명히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진실왜곡이나 침묵 등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우리 언론의 문제점은 언론의 선정성, 자극성이라고. 당시 발표 자료 확보를 위해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를 인터뷰했는데, 유독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화면들은 뇌에서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길들여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인 걸 원하고, 이는 다시 대중문화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문화도 국가 경쟁력인데, 이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면 우리나라의 경쟁력도 떨어지는 것입니다."
참 맞는 말이다. B급 기사가 C급 악플러들을 생산하고, 그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또다른 D급 기사가 탄생한다. 이러다 보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도 계속해서 낮아진다.
뭐 하긴, 이미 낮아질대로 낮아지긴 한 것 같다.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들조차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일명 네거티브), 참 유치하게도 싸워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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