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하일 콜하스의 선택’이라는 영화를 봤다. 중세 봉건시대에서 귀족(남작)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평민(콜하스)이 그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정의란 무엇이며 그 정의를 쟁취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내가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영화 제목 그대로 결국 그 사람(미하일 콜하스)이 어떤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 그것에 대한 판단은 내가 감히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쇼미너머니’라는 TV 쇼 프로그램에서 ‘서출구의 선택’을 봤다. 이 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봤거나, 서출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짐작할 수 있다. 서출구가 랩을 8마디만 뱉었어도 그는 절대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생존자와 탈락자가 나뉘는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져야 할 자리에서 서출구는 ‘양보’라는 선택을 했고, 이는 충격의 탈락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처럼 서출구는 정말 착한 친구이고, 힙합의 싸이퍼 문화를 모독한 제작진은 나쁜 사람들일까?
작년에 ADV 크루의 'SRS2014'라는 영상을 촬영하며 서출구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 전국 5개 도시를 돌며 약 5박 10일 동안 서출구를 지켜봤는데, 서출구는 착한 친구였던 걸로 기억된다. 단, 평상시에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친구지만 마이크를 잡은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이크 앞에서는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 않은 근성과 승부욕을 보여주는 친구였다. ‘서출구를 이겨라’라는 랩 배틀을 촬영하면서 단 한 번도 서출구가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마이크를 손에 쥔 서출구가 단순히 착해서 방송 중에 마이크를 양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방송 직후 서출구가 SNS를 통해 한 말처럼 그는 쇼미더머니라는 시스템에서 정해진 룰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제작진이 힙합 프로그램을 표방하면서 막장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서출구 역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전 공연들에서 (가사실수=탈락)이라는 공식을 통해 몇몇 실력자들이 탈락했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기준이 분명했다는 점에서 나름 정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랩을 경청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마이크를 뺐고 육탄전을 벌여야 하는 괴상한 대결을 통해서는 탈락에 대한 어떠한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을까? 사실 룰을 따르지 않은 건 서출구가 아니라 제작진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과는 별개로 제작진 역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일지 모른다. 힙합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시청률도 잘 나오면서 이렇게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쇼미 제작진은 진짜 천재들일 수도 있다. 힙합 프로그램으로서의 쇼미더머니는 결코 아니겠지만 흥미와 막장 요소가 적절히 가미된 쇼 프로그램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천재들이라는 점과는 별개로 ‘서출구의 선택’은 결코 약지 않았다. 영화 ‘미하일 콜하스의 선택’을 보며 판단의 딜레마에 빠졌던 것과는 달리, ‘서출구의 선택’을 보며 비록 결과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 할지라도 분명 더 나은 선택이 존재함을 느꼈다. 또한 그 선택이 비록 시스템 안에서 권장되지 않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서출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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