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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

[인도여행] 도도했던 판공초

레에 도착한 후에도 일행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인들을 만나 총 6명이 함께 판공초에 가게 되었다. 레에서 판공초까지는 지프를 타고 다섯 시간을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무난하게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쯤 도착할 테고, 다음 날 점심쯤 떠난다고 치면 판공초를 꼬박 하루 동안 감상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다 되는 그런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었다. 일단 출발부터 멘탈이 붕괴됐다.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하필 그중에서도) 내 퍼밋(허가증, 판공초에 가려면 허가증이 필요하다.)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퍼밋은 여행사에서 만들어 운전사에게 전달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 퍼밋을 잃어버린 듯했다.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검문소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퍼밋이 없다니!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새 퍼밋을 만들어서 가져왔지만, 그마저도 내 비자 번호를 잘못 적어왔다! 결국, 비자 번호를 고치러 다시 어딘가를 다녀오느라 우리는 두 시간을 넘게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그냥 펜으로 직직 그어서 비자 번호를 고쳐왔다는 거다. 그렇게 허술하게 뚫리는 거였으면 애초에 퍼밋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왼쪽이 여행사 직원 '범수'*, 오른쪽이 운전사 '롭쌍'이다. 사진은 범수가 비자 번호를 잘못 적어왔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며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범수'는 우리가 지어준 별명이다. 범수가 우리를 처음 봤을 때 (예전에 어떤 한국 사람이 자기 보고 강타를 닮았다고 했다며) 자신을 스스로 강타라고 소개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아닌데, 김범수 닮았는데!" 라고 말했고, 그때부터 범수는 범수가 되었다. 범수는 강타와 김범수 중 한국에서 누가 더 인기가 많은지 물어보는 치밀함을 보였고, 난 "동급"이라고 말해주었다. 범수는 썩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때부터 자신을 스스로 범수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 범수가 너무 귀여워서, 한국인 상대로 장사할 때 써먹으라고 친히 김범수 노래(보고 싶다)까지 가르쳐줬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시 판공초를 향해 출발했다. 판공초에 가는 길 역시 아름다웠다.

 

 

 

하지만 또다시 안 좋은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는 날씨였다. 가는 내내 흐리고 비바람이 불더니 '창 라'(5360m)에 다다르자 아예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9월 중순에 보는 첫눈이란... 게다가 나는 긴 바지가 하나도 없었단 말이다!

 

 

 

판공초에 도착하니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흐리고 비바람이 불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물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판공초였지만,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만큼은 태양을 피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태양이 없으니 판공초도 그냥 흔하디흔한 물 색깔과 다를 게 없었다.

 

 

 

첫날은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가 있기도 힘들었다. 우리 여섯 명은 낮부터 숙소(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준비해온 '애플 바카디'로 몸을 목이고, 게임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판공초까지 와서 숙소에 처박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는 시간이었다. ^^

 

 

 

 

기분 탓이었을까. 밤이 오자 혹한기 훈련이 생각날 만큼 더욱 추워졌다. 침낭을 덮고 천막 안에 마련된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 와중에 우리를 설레게 한 건 밤하늘이었다. 별들이 빼곡히 들어찬 밤하늘은 은하수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는데, 이는 내일 날씨가 흐리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들 DSLR 카메라에 별을 담느라 바빴고, 애초에 별을 담을 수 없는 핸드폰 카메라 밖에 없었던 나는 일찌감치 들어와 잠을 청했다.

 

아침이 밝았다.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 사람들을 깨우고, 판공초 물가에 가서 해가 뜨길 기다렸다.

 

 

(오늘은 해가 뜰까?)

 

 

(일출 직전)

 

그날 일출을 보니 느낌이 좋았다. 상상 속에서 그리던 판공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판공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세 얼간이 촬영지'에 도착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영화 속 판공초의 물 색깔은 볼 수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금까지의 고생을 모두 잊게 해줄 만큼 아름다웠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바다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해발 4000m 위의 거대한 호수를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판공초는 결국 우리가 떠날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 색깔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여태껏 보아온 호수 중에서 제일 도도한 호수였다. 호수도 역시 도도한 맛이 있어야지, 처음부터 다 보여줬으면 재미없었을 뻔했다. ^^

 

 

(내 핸드폰 배경사진 ^^)

 

 

 

(잠시라도 볼 수 있던 그 모습에 난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그분은 나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이렇게 탄생한 내 생에 베스트 컷!!!

 

 

 

이건 보너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