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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

[인도여행] 델리에 세 번 가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지만 여행지로써 썩 좋은 도시는 아니다. 워낙 복잡하고, 사람도 많고, 인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는 '근대화'가 많이 진행된 곳이라 인도 특유의 느낌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델리에 세 번이나 가게된 건 어쩔 수 없는 이유였다. 처음에는 델리에서 비행기를 내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북인도 여행을 마치고 중부 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교통의 요지인 델리에 들러야 했다. 세 번째 역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델리로 갔다.

 

 

<충격적인 델리의 첫인상>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처음 빠하르간지에 내렸을 때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새벽 5시 쯤 도착했던 걸로 기억한다. 거리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을산 속에 쌓인 낙엽마냥 수북했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쓰레기 냄새, 동물 똥 냄새 등이 섞여 습하고 시큼한 향이 풍겼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이 한 명 죽어있는 걸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길에서 자던 사람이었다. 몸이 너무 말라서, 그렇게 누워있으니 영락없이 죽은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워낙 인도의 낙후함에 대해 각오를 하고 가서 그런지, 처음 숙소를 잡고도 별로 놀라진 않았다. 그냥 이정도만 되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이 화장실이 내가 인도 숙소에서 본 최악의 화장실이었다. 같은 가격의 숙소라면 오히려 델리 숙소가 다른 지역보다 더 낙후되어 있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건 짜증날 만큼 계속해서 크게 울려대는 차 경적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동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경적소리는 금방 익숙해졌지만 처음 델리에 있던 이틀 동안 사람들이 왜 나만 쫓아다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델리에 갔을 때는 달라붙는 사람이 확 줄었다. 나도 그제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건 그냥 딱 보면 안다. '아, 저 사람 지금 막 인도에 왔구나' 아무리 감추려 노력해도 인도에 처음 온 사람들은 확 티가 난다. 하이에나 같은 장사꾼과 삐끼, 동냥꾼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혼자 다니는 어린 사슴처럼 보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하루 동안의 델리 관광. 진짜 볼 게 없다, 델리는.

 

 

각종 관광 책자에 '델리의 명소'라 소개되어 있는 레드 포트(Red fort). 근데 막상 보면 실망스럽다.

 

 

델리대학 예술학부 캠퍼스 안. 더위를 뚫고 땀흘려가며 왜 갔나... 싶을 정도로 별 게 없다.

 

 

델리에서 제일 시원한 곳은 지하철 안이다. 진짜 에어컨을 무식하게 튼다. 호텔이나 상점보다 훨씬 시원하다. 마치 찜질방에 있다가 '아이스방'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나마 델리에서 제일 볼만했던 곳. 꾸뜹 미나르.

 

 

<두 번째 델리>

 

약 한 달 동안의 북인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델리에 왔다. 북인도 여행 동안 신체가 너무 고생해서 델리에서의 목표는 '잘 먹고 잘 자기'였다. 조금 무리해서 에어컨 딸린 방을 잡고, 매 끼니 비싼 음식만 골라 먹었다.

 

확실히 두 번째 방문하니 그렇게 복잡할 수 없었던 빠하르간지 골목도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델리에서 돌아다녀봤자 별거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먹고, 자고, 쉬기만 했다. 한 가지 한 게 있다면 쇼핑. 델리 빠하르간지의 최신 유행하는 옷으로 뽑아봤다. '빠간 스타일 룩' 완성.

 

 

모자, 윗도리, 알라딘 바지, 전대 각각 150루피. (3500원 정도)

 

 

<세 번째 델리 ㅠ>

 

델리에 세 번째 오니까 어느새 너무 친근해져 버렸다. 마치 우리집이 원래 빠하르간지고, 잠깐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인도에 왔다 갔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서 '헤나'(문신 비슷한 거) 가게에 갔다.

 

 

내가 들어간 헤나 가게는 관광객들에게 악명 높은 가게였다. 처음에 이곳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헤나를 하고 필요 이상의 엄청나게 많은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인도에 온지 두 달이 다 됬고, 알만한 거 다 알기 때문에 용감하게 들어갔다. 헤나를 하기 전에 '가격 쇼부'를 쳤다. 40루피(1000원 정도)에 해주겠다고 했다. 나중에 딴말 할지 몰라서 한번 더 확인했다.

 

"All 40 rupi, OK?"  ---  "OK!"

 

그런데 헤나를 다 그렸을 때 갑자기 줄자를 가지고 오더니 길이를 재려고 한다. 왜 길이를 재냐고 물어봤더니 가격표를 다시 가져온다. 가격표 맨 위에 정말 사람 눈에 보일랑말랑한 작은 글씨로 '1인치 당 40루피'라고 적혀있다. 길이를 대충 보니 200루피가 넘게 나올 분위기였다. 아, 이렇게 사기를 친다는 거구나. ㅋㅋㅋ

 

순간 나는 진심으로 흥분했다. 내가 이래봬도 인도에서 짬이 얼만데 나한테 사기를 치냐! 나는 즉시 손수건을 들고 헤나를 지우려는 모션을 취하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I'm very angry now, I will cancel!"  --"Oh! no, nonono"

 

헤나 가게 상인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거였다. 내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이 100루피만 내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합의한 40루피에서 1루피도 더 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손수건으로 지우려고 하자 나에게 진정하라며, 그냥 40루피만 내고 가라고 하더라. 결국 나는 사기를 역으로 이용해 '역사기'를 친 셈이었다. ^^

 

아무튼 인도를 떠나던 날 '엄청난 비'가 내렸다. 인도의 하늘도 내가 한국에 돌아가는 게 슬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