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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인간쓰레기-잉여인간

이 글은 2011년 1월 25일에 싸이월드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일부 수정)

 

과연 특정 사람을 '인간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세워놓은 기준에 인품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 판단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 사람의 전후 사정에 대한 적확한 관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특정 사람을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학자라는 사람이 '인간쓰레기'라는 단어를 객관적인 뜻을 가진 용어마냥 사용하는 것을 봤다. 헌데 신기하게도 그 책에서 사용한 '인간쓰레기'라는 단어의 뜻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책에서는 현대사회에서 경제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방해가 되는 존재, 사람들의 불쾌감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존재의 사람들을 일컬어 '인간쓰레기'라고 하고 있다. 길거리의 노숙자나 범죄자, 공산주의 국가 등 '불안한' 국가를 탈출해 도망 온 망명희망자, 이 밖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최소한의 인구를 제외한 나머지 필요 없는 사람들을 인간쓰레기라는 명칭으로 사용했다. 현실에서는 이 명칭을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여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우리가 농담으로 "나 요즘 완전 잉여야" 라고 하듯이 '잉여'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은 '쓰레기'에 비해 상당히 덜한 모양이다. 잉여의 유의어가 찌꺼기, 부스러기 라는 점이나, 국가 차원에서 쓸모없어서 버리거나 처리하고픈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잉여라는 말이나 쓰레기라는 말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약간의 대담함과 잠깐의 방황만 있어도 누구나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흥미가 다른 곳에 있어서 스펙 쌓기를 소홀히 한다던가, 중요한 시기에 인생을 즐겨버리면 어렵지 않게 잉여의 삶을 살 수 있다. 물건의 생산을 기계가 대신하기 때문에,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들과 최소한의 전문 인력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돌아가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농담으로 잉여잉여 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잉여들에게는 돈을 벌 수 없으니 소비를 할 수 없다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다. 현대인들은 소비를 통해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쇼핑으로 풀어야 하는데 잉여들은 스트레스를 풀 방법조차 가질 수 없다. 

 

교육의 일환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똑같은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쉽사리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노숙자나 실업자, 낯선 이방인에게 복지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그 짊은 누가 대신 짊어져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한편으론 미래 혹은 현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공포로 인해 자아가 요동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든 것을 단념한 채 사회에서 제공하는 쳇바퀴를 굴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언제든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인간을 '쓰레기'에 비유하는 데에는 거부반응을 느끼는 듯하다. 이보다 완곡한 표현으로 농담삼아 '잉여스럽다', '잉여돋네' 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어쩌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문학적 감수성이 창작해낸 뼈있는 '자학적 풍자'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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