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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그리 야박하게 굴지 맙시다!

신촌에서 서강대로 가는 길 골목에 허름한 횟집이 하나 있다. 대게 그곳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히 술 한 잔 기울이기 좋은 곳이다. 하루는 친구와 술 한 잔 하려고 그 횟집에 갔는데 약 20여 명의 단체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부터 50대의 아저씨까지 다양해서 도통 어떤 모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대략 '등산 후 회식'이나 무슨 인터넷 동호회 모임 같았다.

 

 

나는 정말 싫어하는 게 두 가지 있다. '더운 것'과 '시끄러운 것'. 평소에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지만 이 두 가지 조건에서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날 그 20여 명의 단체손님은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라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려고 그 가게에 온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노래는 한명씩 돌아가면서 다 불렀다. 노래가 그리 듣기 싫었던 건 아니고, 노래가 끝나고 쏟아지는 환호성이 싫었다. 조용히 이야기 하면서 술 먹고 싶었는데, 친구와 마치 나이트에 온 것 마냥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 사람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그 사람들이 떠들면서 재밌게 놀 권리를 인정했다. 그 사람들도 즐길 권리가 있는데, 다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권리만 주장하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내 눈 앞에서 키스를 하든, 술 먹고 소리를 지르든, 내 집 앞에서만 아니면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키스 하고 싶으면 하고,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으면 소리치며 '세상을 다 가져라' 이거다. 가끔 이런 것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정도로 인정머리 없이 살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12월 8일. 나는 이 세상에 배신감을 느꼈다. 술집에서 금연이라니. 그래, 뭐 음식점 금연은 이해한다. 밥 먹으러 왔는데 담배연기가 코로 솔솔 들어오면 짜증나는 거 나도 아니까. 그런데 술집 금연은 너무했다. 사람들이 술집에 가는 목적이 뭔가. 마시고, 놀고, 먹고, 떠들고, 담배도 피우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담배는 나가서 피워라'랑 '떠들려면 나가서 떠들고 와라'랑 개념이 많이 다른가? 누군가가 담배 연기가 싫다면 나도 시끄러운 거 진짜 싫은데? 물론 뭐 임산부 앞에서까지 담배를 피우는 개념없는 행동까지 인정해달라는 건 아니다. 

 

아! 언제부터 세상이 이리 야박해진 것일까. 요즘에는 애완견을 키우는 걸 금지하는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조그만 강아지가 짖으면 얼마나 짖고, 싸면 얼마나 싼다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강아지를 키우는 일 자체를 금지해야 하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굉장히 이기적으로 변했고, 자신이 털끝 만큼의 피해를 받는 것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도 주고, 가끔은 피해도 주며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니겠나. 그게 사람 사는 냄새요, 맛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제발 우리, 그리 야박하게 굴지 맙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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