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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반장선거와 대통령선거

몇 학년 때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반장선거가 있었다. 반장후보가 몇 명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누가봐도 유력한 후보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나와 친하게 지내던 남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말도 거의 섞어보지 않은 여학생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여학생이 반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차 어린 나이었지만 왠지 그 여학생이 '반장'이라는 직책에 더 어울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은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학생이었던 반면 내 친구는 그저 철없고 장난기 많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나와 친하게 지내던 남학생에게 투표했고, 그 녀석이 반장이 됬다.

 

그 녀석에게 투표를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친구가 반장이 되면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반장이 되면 나 뽑은 애들 전부 떡볶이 사줄게."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 나온 공약은 100% 지켜진다.

둘째,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너 나 뽑아줄거지?"라고 묻는 친구 앞에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른 애한테 투표하면 나와 그 친구가 속한 그룹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초딩'이 아니다.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 왜 그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단순히 다른 후보가 싫어서라는 사람에서부터 각 후보와 자신의 사상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사람들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이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

 

첫째, 현실적인 이익이다.

반장선거와 달리 대통령후보의 공약은 지켜질 수 있는 확률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후보를 지지한다. 올해 방송된 '추적자'라는 드라마에서 박근형 할아버지의 다음 대사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이 나라 국민들이 동윤이한테 속고 있다고 생각하나. 집 가진 놈은 집값 올려준다카제, 월급쟁이한텐 봉급 올려준다카제, 다 저희들에게 이익이 되니 지지하는기다. 아 그런데 집값 올려준다캐서 지지한다카면 부끄럽다아이가. 그러니 개혁의 기수다 뭐다 해서 지지한다고 속이는 기다” 

 

 

둘째,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부모님과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내 또래의 친구를 별로 보지 못했다. 내 또래 친구들의 정치 성향의 80% 이상은 'home made'다.

또한 어렸을 때에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도 친구일 수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는 자기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만이 남는다. 이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만큼 헷갈리는 문제다. 과연 친구니까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건가, 아니면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니까 친구인가.

확실한 건 주변사람들이 전부 비슷한 정치 성향이라면 '나 혼자' 다른 성향을 가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한 후보의 외침대로 어쩌면 '사상보다 사람이 먼저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정해놨다. 앞으로 어떤 기사가 보도되고, 어떤 변수가 생겨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이유로 그 사람을 지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20여 년 전 반장선거를 할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위의 이야기와 별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어제 밤 문득 이 노래가 급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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