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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비정규직 알바생의 반란

수중에 돈이 너무 없어서 그저께 하루 택배 분류 및 적재를 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해당 지역의 대형 물류센터로 들어온 택배를 다시 시나 구 별로 분류해 적재하는 일이었다. 간간히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며 가끔씩 짜증도 냈었는데, 상상 이상의 엄청난 물량과 야간에 그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괜스레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일은 물론 택배업체 직원들도 있지만 매일 알바를 고용하지 않으면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용역업체에서 '알바천국' 같은데 모집글을 올려서 알바에 지원한 사람들을 해당 물류센터로 보내준다. 아마 택배업체에서는 작업인원을 다 직원으로 쓰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절반 정도의 인력은 용역업체로부터 공급받는 듯하다.

 

 

아무튼 50여 명의 인원이 이 일을 함께 하는데, 위 그림처럼 타 지역에서 온 트럭 A에서 택배물을 내리면 기계를 타고 돌면서 각 지역으로 가게될 트럭 B에 싣는 작업이다. 50여 명의 인력이 유기적으로 일을 하지만 택배업체 직원들은 대부분 물자를 분류해서 바코드를 찍은 후 (인터넷 쇼핑 할 때를 생각해보면 이 바코드를 찍어야 '배송중'이라고 뜨는 것 같다) 물건을 해당 트럭 쪽으로 보내는 고급 노동(?)을 한다. 나처럼 처음 온 알바들은 대부분 두 명 씩 트럭 B에 처박혀서 물건을 차곡차곡 쌓는 단순한 노동을 한다. 

 

이 일의 단점은 두 가지다.

첫째로 쉴 시간이 없다. 점심(야간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밤 12시에 먹는 밥을 점심이라고 부른다)시간을 제외하고 기계는 쉴새없이 돌아가는데, 기계의 속도에 맞춰 쏟아지는 물건을 거대한 트럭에 차곡차곡 쌓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내 작업 파트너가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에 미안해서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임금이 너무 짜다. 저녁 7시에서 아침 7시까지 일을 하는데 일당이 6만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동의 강도를 생각했을 때 터무니없는 일당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일은 저녁 7시에 시작하는데 5시 반까지 미리 와서 한 시간을 넘게 그냥 대기하라고 한다. 출퇴근 시간까지 하면 대략 15시간을 잡아먹는 일인데, 시급으로 계산하면 5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야간에 하는 일인데도 급여는 편의점이나 피시방 주간 알바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알바들은 대부분 두 부류다. 나이 어린 학생들, 아니면 나이 많은 아저씨들. 아저씨들이야 생계를 위해 일을 하겠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그냥 일당 바로 지급한다니까 온 경우가 많은 듯했다. 학생들은 일을 하며 불만이 많이 쌓인 표정이 역력했다. 나 역시 하루니까 참고 했지 또 하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의외로 알바생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다. 어린 학생들이라 작업 도중에 가거나 농땡이를 피우면 돈을 받지 못한다는 작업반장의 말에 위축되서 그런 듯했다.

 

수십 대의 8톤 트럭이 왔다 갔다 하며 결국 일은 6시 40분 정도에 종료되었다. 하지만 업체 측에서는 트럭 한 대 물자만 더 창고에 쌓는 일을 해달라고 했다. 이 일만 하면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하나가 되어 열심히 물건을 내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알바생들이 가만히 서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 시계를 보니 시간은 7시 3분이었다. 정해진 시간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더는 못하겠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택배업체 직원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갈 생각을 해야지, 일하러 온 사람들이 뭐하는 짓이야!"

 

그 직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딱 일곱시가 됬다고 갑자기 손을 떼는 알바생들이 인정머리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알바생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왔지, 택배업체 직원들을 도와주기 위해 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대치 상황에 이르고, 누군가가 불을 지르면 확 타오를 분위기였다. 

 

하지만 군중심리인지, 가재의 개 편들기 심리인지, 나도 그 장면을 보자 더이상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슬쩍 화장실에 들어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이 일을 택배업체 직원들이 다 맡아서 하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택배업체의 경쟁력은 가격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인건비를 줄인다. 인건비와 행정상 편의를 대신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용역업체가 생겼고, 용역업체의 경쟁력도 가격이다. 용역업체는 용역대행 업무를 따내기 위해 가격경쟁을 벌이고, 그러다보니 알바들에게 합리적인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다. 사실 이 사건도 알바생들이 충분한 일당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면 이 정도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비정규직 알바생의 반란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 이었다. 이전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경험이나 비정규직 문제나 따지고보면 큰 맥락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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