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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오늘을 사는 사람

지난 몇 주 동안 송년회를 빙자하여 많은 술을 마셨다. 나가수 2012 가왕전은 더원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고, 방송사 별로 각종 연말 시상식이 한창이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연말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주위에 감사하며 덕담을 건네고, 새로운 계획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이야기한다.

 

이제 오늘 해가 지고 다음 해가 뜰 즈음이면 나도 스물 아홉이 되나보다. 스물 아홉이라...

 

언젠가부터 나는 생일이 싫어졌다. 발렌타인 데이 같은 '데이'도 싫어한다. 크리스마스라고 뭔가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도 싫다. 나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그저 죽지 않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매년 생일과 크리스마스, 새해 등을 맞이하고,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지 않아도 나이를 먹는다.

 

 

어쩌면 우리는 날짜나 나이라는 틀에 너무 갇혀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은 항상 같은 태양인데, 어떤 날은 생일이라고 케잌에 촛불을 켜고 축하를 받는다. 어떤 날에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선물해야 하고, 어떤 날에는 연인과 함께 있지 못하면 패배자처럼 느껴진다. 또 어떤 날에는 한밤중에 보신각 종이 울리며 모두 사이좋게 나이를 나눠 먹는다. 그렇게 이벤트 성격의 날들을 보내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가.

어제의 나나 내일의 나나 크게 바뀌는 건 없는데, 나이에 따라 책임과 의무가 생겨난다. 8살이 되면 학교에 입학하고, 20살이 되면 갑자기 성인이 된다. 서른 즈음이 되면 돈을 벌지 못하는게 이상해지고, 결혼도 생각해야 한단다. 즉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가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헷갈린다. 오히려 '이 나이를 먹고 이런 일을 해서는 안돼', '아 왜 난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하나' 같은 생각들을 하며 얼마나 많은 소중한 기회들을 흘려 보냈는가.

 

정말 지금까지 날짜나 나이를 너무 많이 의식하고 살았던 것 같다. 특정 날짜에 대한 괜한 설렘으로 잠 못 이루기도 했고, 한해를 마무리하고 나이를 먹을 때마다 지킬 수 없는 다짐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포기를 하곤 했다. 물론 나이는 인생에 있어서 내가 얼마만큼 살아왔고, 또 얼마나 더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참고가 될 수 있다. 날짜도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얼만큼 살아왔건, 오늘이 어떤 날이건, 중요한 건 오늘을 살아가는 자세다. 그래서 올해에는 특별히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기보단, 미래에 대한 계획과 다짐으로 며칠 동안 설레기보단, 그냥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새해, 2013년 1월 1일, 내 나이 스물 아홉. 이런 거 다 신경쓰지 않으련다. 나는 창창한 미래가 있는,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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